“이제 명절에 ‘시댁’ 안 가”.. 친정 향하는 며느리들


결혼 20년차 워킹맘인 A씨는 최근 남편에게 “설 연휴 동안 시가에 안 가고 친정에서 푹 쉬고 오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명절 전날이면 만사 제쳐 놓고 시가로 달려가 차례상 음식을 준비했다. 하루 종일 밑반찬을 하고 전을 부쳤다. 그런데도 차례를 지내고 나서 시가와 그리 멀지 않은 친정에 가려면 눈치를 봐야 했다. 시어머니는 A씨의 두 아들에게 외할머니 집에 갈 건지, 저녁 먹으러 다시 올 건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기 일쑤였다. 평소 처갓집을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은 지난 추석 때 몸이 안 좋다며 친정에 함께 가지도 않았다. 그간 꾹꾹 참았던 설움이 결국 폭발하고 만 것이다.

최근 A씨처럼 명절에 더 이상 시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명절에는 으레 시가에 가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발로인 셈이다.

결혼 10년차인 또 다른 워킹맘 B씨도 이번 설에 시가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명절 때마다 친정에 가는 문제로 남편과 입씨름을 해야 했던 그는 “가뜩이나 친정에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는데, 남편이 명절에도 친정에 가기 싫어한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82쿡, 맘스홀릭 등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설에 시가에 가지 않겠다고 밝히거나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흔히 쓰이는 ‘시댁’과 ‘친정’이란 말에 문제를 제기한다. 결혼 2년차 직장인 이모(30·여)씨는 “시댁은 시부모가 사는 집인 ‘시집’의 높임말이고, ‘시가’는 시집과 같은 말”이라며 “시댁을 시가나 시집으로 낮춰 부르거나 친정을 ‘친정댁’으로 높여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의 본가를 의미하는 ‘처가’도 ‘처가댁’이란 높임말이 있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서 며느리가 명절에 시가에 안 가겠다거나 친정에 가겠다고 선언하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부부 싸움이나 가정 폭력, 심하게는 이혼이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광주에서는 추석 연휴 계획을 바꿔 친정에 가겠다는 아내를 40대 남성이 때리는가 하면, 그해 1월 청주에서는 설에 시가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와 말다툼을 벌여 경찰 조사를 받은 50대 남성이 만취해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차를 몰고 돌진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이 무소속 이찬열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명절 연휴 기간 가정 폭력 112 신고 건수는 2014년 7737건에서 2015년 8491건, 2016년 1만622건으로 최근 3년간 증가하는 추세다. 추석 연휴 기준으로는 2014년 4599건에서 2015년 3983건으로 줄었다가 2016년 6165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찬열 의원은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상처를 받기 쉽다”며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인 만큼 명절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이제 명절에 ‘시댁’ 안 가”.. 친정 향하는 며느리들